라인야후가 공동 대주주인 네이버를 향해 지분 매각을 공식적으로 요구하면서 일본의 '라인 탈취'가 본격화됐다 [사진=연합뉴스]

[폴리뉴스 김승훈 기자] 네이버의 메신저 기술을 기반으로 설립된 한일 합작회사 라인야후가 공동 대주주인 네이버를 향해 지분 매각을 공식적으로 요구하면서 일본의 '라인 탈취'가 본격화됐다.

하지만, 우리 정부는 일본 정부에 대한 별다른 항의 메시지를 내놓지 않고 있으며, 오히려 외교부가 일본 정부의 입장을 배려한 정황이 확인돼 논란이 예상된다.

윤석열 대통령도 이날 취임 2주년 기자회견에서 "한국 대통령과 일본 총리는 서로에 대해 충분히 신뢰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답변해 안이한 상황인식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이에 여권 내부에서도 "더 이상 정부가 손 놓고 있어서는 안 된다"며 적극적인 대응을 촉구하고 나서고 있다.

라인야후, 한국인 이사 사임.. CEO "네이버와 위탁 관계 종료, 기술적 독립 추진"

자민당 의원 "라인야후, 일본 인프라 돼야"

일본 총무성은 지난해 11월 네이버 클라우드가 사이버 공격을 받아 일본 국민 메신저인 라인에서 약 50만건의 개인정보 유출이 발생하자 두 차례 행정지도에 나섰다. 행정지도에는 라인야후에 네이버와 자본 관계 등을 재검토하라는 내용이 포함됐다.

라인은 일본에서만 사용자가 9600만명에 이르며 태국, 대만, 인도네시아 등까지 포함하면 2억 명이 넘는다. 국내 기업이 운영 중인 플랫폼으로는 가장 규모가 커 네이버 내에서도 알짜 사업으로 꼽힌다.

라인야후는 네이버와 일본 소프트뱅크가 각각 절반의 지분을 갖고 있는데 일본 정부의 행정지도는 네이버가 라인야후의 경영권을 상실하게 되는 결과로 이어진다. 사실상 라인야후를 자국 기업으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지난 8일에는 라인야후 이사회 의결로 이사회의 유일한 한국인이었던 신중호 최고제품책임자(CPO)가 이사직에서 물러났으며, 같은날 이데자와 다케시 라인야후 최고경영자(CEO)는 일본 도쿄에서 열린 실적 발표 자리에서 "네이버와 위탁 관계를 단계적으로 종료하고, 기술적 협력 관계에서 독립을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날 이데자와 CEO는 네이버의 지배력에서 벗어나겠다는 의지도 피력했다. 그는 "종합적인 판단 아래 네이버에 자본 관계의 변경을 강력히 요청하고 있다"며 "소프트뱅크가 가장 많은 지분을 취하는 형태로 변화한다는 대전제를 깔고 있다"고도 말했다.

일본 집권당에서는 라인이 '공공재'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라인과 네이버 간 연결고리를 끊어야 한다는 노골적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아마리 아키라 자민당 경제안전보장추진본부장은 총무성이 라인야후에 두 번째 행정지도를 한 직후 "플랫폼 사업자는 사기업인 동시에 공공재"라며 "근본적 대책이 나올 것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일본 아사히 신문도 9일 집권 자민당 일부 의원이 라인야후에 대해 "명실공히 일본 인프라가 아니면 안 된다"며 엄격한 조치를 요구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공무원 노조·시민단체 "정부, 중요한 기술자산·경제 주권 지키는 노력 필요"

정부는 일본 총무성에 "반일감정 심하니 네이버 라인 오해라고 말해달라"

국가의 중요한 기술자산과 경제적 주권을 지키기 위해서 정부의 단호하고 명확한 대응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하지만, 우리 정부는 일본 정부에 대해 한마디 항의조차 하지 않고 있다.

국가공무원노동조합은 9일 성명서를 내고 "일본 정부가 네이버 '라인'에 대한 경영권을 자국 기업에 넘기라는 압박을 가하는 가운데, 정부의 미온적 태도가 국가의 자존심과 국민의 이익을 저해하고 있다"며 "라인은 한국의 대표적인 글로벌 기업 네이버가 일본에서 성공적으로 자리 잡은 사례다. 일본 시장에서 거대한 사용자 기반을 확보하며 글로벌 플랫폼으로 자리매김한 라인은 우리 기술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려 왔다"고 밝혔다.

이들 조합은 "이런 중요한 자산이 외국 정부의 압력에 의해 흔들릴 위기에 처해 있음에도 정부는 이에 대한 명확한 대응책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라며 "이는 단순히 기업의 문제를 넘어서 국가 전체의 경쟁력과 독립성이 위협받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시민단체 'IT 공정과 정의를 위한 시민연대' 준비위원회도 이날 "어떻게 공산주의도 아닌 민주주의 국가에서 해외기업의 자산 매각 강요라는 사태가 발생할 수 있는가"라며 "이번 사태를 묵과한다면 향후 한국 기업이 서비스하는 모든 국가에서 동일한 요구에 직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리 정부는 심각한 위기의식 하에 적극 대응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7일 <조선일보> 보도에 따르면, 우리 정부는 오히려 일본 정부가 곤란한 상황에 빠질 것을 걱정해 우리나라 언론에 해명 기사를 요구한 것으로 확인된다.

조선일보 성호철 특파원은 지난 2일 도쿄특파원단의 단톡방에서 긴급회의가 열렸다고 밝혔다. 일본 총무성이 라인 사태와 관련해 한국 언론 한 곳과 인터뷰를 원한다는 내용이었다. 즉, 한 곳과만 인터뷰를 할테니 다른 언론은 이를 참고해 보도하라는 의미였다.

이에 특파원단은 기자회견이나 브리핑을 요구하며 이를 거절했다. 하지만, 일본 총무성은 그날 바로 한 언론사와 통화했고 이후 '日 총무성 당국자 "라인야후 행정지도, 지분 매각 강요 아니다"'라는 기사가 게재됐다.

성 특파원은 "주일 한국대사관에 물어보니 한국 내 반일 여론이 드세니 전화로라도 한국 언론에 오해라고 말해달라고 총무성에 요청한 게 한국 정부였다"고 전했다.

즉, 네이버가 겪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 보다 '한일관계 개선'이라는 윤석열 정부의 치적이 훼손되는 것을 막는데 급급했다는 의미다.

전날 라인야후가 네이버 지분 매각을 언급한 다음 날인 9일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 2주년 기자회견에서 양국 정상은 서로 신뢰하고 있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일본 외신기자로부터 '대일관계 대응 방침과 기시다 총리와의 협력 가능성'에 대한 질문을 받고 "저와 기시다 총리는 서로에 대해서 충분히 신뢰하고, 양국 관계를 발전시키기 위해 마음의 자세가 충분히 있다는 걸 서로가 잘 알고 있는 상황"이라고 답변했다.

이어 "한일 관계는 과거사와 또 일부 현안에 대해 양국 국민들의 입장 차이가 존재한다"면서 "그러나 양국의 미래와 또 미래 세대를 위해, 우리가 어떻게 할지를 생각해야 한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여러 현안이라든가 과거사가 걸림돌이 될 수는 있겠지만 확고한 목표를 갖고 인내할 것은 인내하면서 가야 할 방향을 걸어가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인태 지역과 글로벌 사회에서 양국의 리더십 확보를 위해 협력해야 한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윤상현 "지나친 압박.. 정부가 나서야" 유승민 "기시다와 술 마시며 쌓은 신뢰로 해결하라"

여권 내에서도 "더 이상 정부가 손 놓고 있어서는 안 된다"며 대응을 촉구하고 있다.

윤 의원은 이날 오후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오늘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는 라인야후 사태에 대해 한일 양국 정부의 신속한 대응을 촉구하기 위해 이 자리에 나왔다"며 이같이 밝혔다.

그는 "지난주 민간, 정부, 국회가 참여하는 범정부 TF를 구성하는 방안도 제시했다"며 "하지만 아직까지 실질적인 조치는 취해지지 않았다. 결국 일본 정부의 압박을 받아온 라인야후가 네이버 축출에 나섰다"고 지적했다.

이어 "네이버의 입장과 판단만 기다릴 것이 아니라 정부가 해외 진출 국내기업을 보호하고, 한일관계에 미칠 파장을 조기 차단하기 위해서라도 적극 나서야 한다"며 "해킹 사고에 대해 일본 정부가 원인분석과 재발 방지에 나서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보완 조치나 벌금 등의 페널티가 아닌 지분 정리까지 요구한 것은 지나친 압박이라는 것이 중론"이라고 강조했다.

윤 의원은 "결국 일본 정부가 이번 사태를 심각하게 여기는 것은 국내적으로 정보보호에 초민감할 뿐만 아니라 해킹주체가 북한, 중국 등 적성국으로 보고 있는 것은 아닌지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며 "우리 정부가 일본 정부, 네이버와 함께 진상을 파악하기 위한 공동 조사에 나서야 한다고 생각한다. 만에 하나 해킹 사고에 적성국 등이 관련된 정황이 있다면 이 역시 정부가 나서고 조치를 취해야 할 일"이라고 촉구했다.

그러면서 "우리의 국익과 한일 간의 신뢰관계를 위해 더 이상 우리 정부가 사태를 방치해서는 안 된다"며 "해외 진출 국내기업을 보호하고 한일관계경색을 막기 위해 즉각적인 행동에 나서야 할 때"라고 덧붙였다.

유승민 전 의원도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적대국도 아닌 우방국 기업의 투자에 대해 일본 정부가 지분매각을 강요하는 것은 자본주의 시장경제권의 글로벌 스탠더드를 한참 벗어난 폭력적 처사"라고 밝혔다.

유 전 의원은 "그런데 이 사태가 발생한 이후 우리 정부의 대응이 한심하다"며 "대통령실과 외교부는 한마디 말이 없고, 과학기술부가 '네이버의 의사결정을 보장하기 위해 네이버와 긴밀히 협의하고 있다'고만 한다"고 비판했다.

그는 "네이버가 일본 정부에게 두들겨 맞고 소유권, 경영권을 빼앗길 위기에 처했는데 가해자인 일본 정부의 부당한 처사에 대해서는 한마디 항의와 경고도 못 하고 일방적 피해자인 네이버와 긴밀하게 협의하는 게 무슨 소용이냐"며 "강제징용에 대한 제3자 배상,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허용 등 일본에 주기만 한 대일 외교의 결과가 이것이냐"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이 일은 대통령과 외교부가 나서서 일본 정부에 강력히 항의하고 우리 기업의 해외투자를 보호해야 할 일"이라며 "지금이라도 나서야 한다. 우리 정부가 강하게 대응해야 지금 일방적으로 당하고만 있는 네이버도 협상력을 가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오늘 기자회견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저와 기시다 총리는 서로 충분히 신뢰'한다고 했다"며 "기시다 총리와 술 마시며 쌓은 신뢰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 아니었냐. 그저 술만 마시며 좋은 게 좋은 관계는 국익에 아무 도움도 안 된다"고 직격했다.

민주 "일본 편들고 자빠져" 조국당 "아직도 더 일본에 퍼줄 게 있나"

야당은 정부의 대응을 보다 강한 어조로 비판했다.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이날 유튜브 방송 '장윤선의 취재편의점'에서 "일본한테 굴종적인 외교를 하는데 뒤통수만 맞고 있다"며 "그것(라인 사태)도 외교부가 나서 가지고 저쪽 편을 들고 '자빠져' 계시니 정말 화가 난다"고 말했다.

노종면 원내대변인도 서면브리핑에서 "라인 탈취하는 일본에 한마디 항변도 못하는 참담한 외교를 언제까지 지켜봐야 하나"라며 "한국 외교부의 행태는 한심하다 못해 참담하다. 우려하는 여론이 비등하자 일본 정부를 향해 한국 언론을 통해 오해를 풀어달라고 사실상 읍소했다"고 비판했다.

이해민 조국혁신당 당선인은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일본에서 성장한 우리나라 기업이 일본에 넘어가게 생겼다"며 "윤석열 대통령은 도대체 어느 나라 대통령인가. 이제라도 일본 정부를 강하게 규탄하라"고 주장했다. 그는 "윤 대통령은 아직도 더 일본에 퍼줄 게 있나"라고 말했다.